1782년 과거시험 문제, “운하 대책을 논하라"
1782년 과거시험 문제, “운하 대책을 논하라”
1782(정조 6)년, 정조 임금은 성균관 및 사학(四學) 유생들을 대상으로 춘시(春試)를 시행하면서 그 시험문제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조세 운반 대책을 논하는 것이지만, 핵심은 태안 부근의 운하 건설 대책을 논하는 것이었다.
조선조의 조세 물자 운반은 육로(陸路) 대신 주로 수로(水路)―해운(바닷길)과 수운(강길)―를 이용할 방법이 강구되었고, 실학자들 역시 수로로 물자를 운반하는 것이 산이 많은 우리나라 지세를 고려할 때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육로는 미비하고 바닷길은 위험하니, 그 대책을 마음껏 기술하라!
하지만, 수로는 배의 침몰로 인해 세곡(稅穀)과 인명 손실 사고가 많았다.
특히 삼남(三南)의 세선(稅船)이 안흥(安興)에서 자주 침몰하는 것 때문에 태안(泰安)의 갯벌을 파자는 논의가 있어 왔던 것이다. 태안의 안면도 부근은 예전에도 그곳이 배가 자주 침몰되는 곳이어서 신숙주, 김육 등의 학자들이 간헐적으로 대책을 논의하곤 했었다.
『홍재전서』에서 요점만 인용해본다.
“해운의 길에 있어서는 고려 때부터 지금까지 개정된 것이 없다. 파선되거나 물에 젖어 썩는 걱정이 오늘날보다 막심한 적은 없었다. 그 폐단은 어디에 있느냐? 안흥(安興)에 포구를 파자는 의논은 오래되었으나 가부가 서로 견지하여 하나로 되지 못하고, 심지어 안흥의 좌우에 조창을 설치하여 위험한 물길을 피하자는 의논도 있다.
대체로 바닷길 천 리에 오직 이곳만 걱정이 되었는데, 지금은 내양의 파도가 평온하던 곳에도 모두 파선이 되고 암초와 모래톱으로 파선되지 않는 곳이 없으니, 비단 안흥만 위험한 곳일 뿐이 아니다. 그렇게 된 까닭은 무엇 때문이냐? ……조운의 일로 백성이나 나라에서 곤란을 겪고 있으니 이 어찌 작은 일이겠느냐. 국가에서 어찌 차마 좌시하고 구제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학사 대부는 반드시 고금의 제도에 달통하고 있을 것이니, 이해의 근원을 탐구하여 공사가 모두 편리하게 하고 해묵은 폐단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각기 편장에 저술하라. 내 친히 열람하리라.”
이 시험 문제 출제 초안은 다산 정약용이 작성했던 것 같다.
『다산시문집』권 9, 책문 조항에 「조운책(漕運策)」이 실려 있는데, 역시 이러하다.
이는 양서 지방(兩西地方)의 곡식은 장산(長山)에서 손실을 당하고, 삼남 지방(三南地方)의 곡식은 태안 부근인 안흥량(安興梁)에서 손실을 당하니, 운하를 파고 뱃길을 뚫어서 배가 다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간헐적으로 되풀이 되어 왔기에 이런 시험 문제를 냈던 것이다.
다산은 이런 주장이 “더러 발언되긴 했어도 시험해보지 않은 경우도 있고, 시작을 하였다가 바로 그만둔 경우도 있었다. 이것은 고위당국자의 수치요, 또한 백성들이 다 같이 걱정해야 될 일이 아닌가 한다. 여러 선비들은 고금의 일을 널리 알고 있을 것이니, 반드시 폐단을 바르게 고칠 계책이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각각 마음껏 기술하라.”고 했다.
요즘 뉴스를 보면서 저절로 이 시험 문제가 자주 생각난다. 정조 임금도, 다산 정약용도, 문제를 탁 터놓고 허심탄회하게 문제를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금은 “학사 대부는 고금의 제도에 달통하고 있을 것이니”라고 믿으면서, “내 친히 열람하리라”라고 경청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고, 최고 수준의 국정 보좌를 했던 다산은 “각각 마음껏 기술하라”라고 다른 학자들을 섬기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 섬김과 경청의 자세야말로 올바른 국정 운영의 첫걸음일 것이다.
도로, 철도, 바닷길이 열렸으니, 대운하 타당여부를 마음껏 기술하라!
대운하 문제는 국토개발, 물류환경개선, 경제발전, 일자리 창출 등등의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은 빈말이고 소수특권층과 그 주변 투기꾼들의 특혜 및 환경파괴를 우려하거나, 정권 이벤트로 기하학적인 돈을 쏟아 붓는 꼴이 될까 의구심의 눈초리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차기 국정최고책임자의 경력상 이 사업의 비현실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거라고 한다. 다만, 1년쯤 추진하는 듯한 제스추어를 하는 것은 선거공약에 대한 예의이고, 각계 전문가와 국민이 반대하므로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국민의 뜻을 섬기는 모습이 되니, 대통령당선자로서는 이래저래 정치 전략상 잃을 것이 없을 거라는 이야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추측과 계산들은 너무도 서글프고 초라하다. 그 바탕에 온통 불신과 분열을 전제로 가능한 논의들이 아닌가! 자신들의 조국, 함께 살아가야 할 국민들을 대상으로 온통 잔 계산만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추측들이 아닌가! 눈물 나지 않나?
만약 다산 정약용 선생이 지금 다시 출제를 한다면, 그때와 반대되는 질문을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산이 많아 육로가 험하지만, 그럼에도 도로망을 훌륭하게 발달시켰다. 그래서 고속도로와 고속철도로 물자를 수송하는 것에도 넉넉히 여유가 있는 상황에 와 있다. 깨끗한 수자원 보호가 전 지구적 과제가 되어가고 있는데, 물자수송을 위해 운하를 판다, 운하를 위해 모든 교량의 교각 거리를 재조정한다, 무엇을 얼마나 운송할 것이 있을지도 계획하지 못한 채 일단 뱃길부터 내고 본다, 이렇게 국책 추진을 하는 것이 옳은지 논하라. 각각 마음껏 기술하라, 내 친히 열람하리라.” [이지양(부산대 인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